[유머의 마법] 유머절벽
유머 감각의 집단 상실은 전 세계인과 조직에 폐해를 끼치는 심각한 문제다.
우리는 모두 유머 절벽을 넘어 저 아래 엄숙함이라는 심연으로 굴러 떨어지고 있다.
우리는 그 심연에서 갤럽조사에 응답한 166개국 140만 명 가운데, 하루 중 웃거나 미소 짓는 횟수가 23세를 전후로 곤두박질친다고 밝힌 사람들과 만났다.
맞다. 당신은 그래프를 제대로 읽었다. 우리는 직장에 들어갈 무렵 웃음을 잃었다가 은퇴하고서야 웃기 시작한다.
이 패턴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어릴때 우리는 항상 웃는다.
평균 네 살배기는 하루에 300번 웃는다. (그에 반해 평군 40세는 두 달 반에 300번 웃는다)
그러다 지라서 노동인구가 되면 갑지가 '심각하고 중요한 사람'으로 변해 넥타이, 정장과 웃음을 맞바꾼다.
곧 우리는 손익계산, 슬라이드 덱, 지루하기 짝이 없는 컨퍼런스콜의 바다에서 가벼운 우스갯소리조차 모두 잃는다.
우리의 작업 환경은 찾기 힘들어 피하는 것이 능사다 싶은 사화적 지뢰로 가득해서 머리가 필핑 돌 정도로 복잡하고 다이내믹히다. 우리의 놀이 감각은 바로 그런 환경에 억눌려 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사람이 상호작용을 피하고 계산적이고 직업적으로만 유지하려 한다. 우리는 매일 유머 감각과 더불어 자아의 많은 부분을 문 앞에 내다 버리고 일터로 향한다.
이런 반응은 일을 하는 데 있어 중요한 문제를 푸는 방법, 스스로 처신하는 방법, 성공하는 방법에 근본적으로 착오가 있음을 암시한다.
직장에서 필요한 것은 더 높은 '전문성'이 아니다. 특히 대면 미팅이 영상 통화로 대체되고 많은 관계가 오직 이메일로만 유지되는 현실에서, 일터에 필요한 것은 더 온전한 자아와 더 활발한 인간관계다. 어떤 순간이나 관계에 변화를 주고 단순거래와 기계 중심에서 상호관계와 실제 사람 중심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그저 실없는 농담 한마디일 때가 많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막고 있는가?
네 가지 공통적인 오해를 다음 글에 이어 가 보겠다. '네 가지 치명적인 유머 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