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게시글은 필자가 작성하여 용인시민신문에 기고 했던 글 입니다.
어릴 적 추억 속의 나무인 주목을 태백산에서 처음 봤다. 죽은 나무처럼 속이 다 파이고 색이 바랜 나무를 보고 아버지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가는 주목이야”하고 말씀해 주셨다. 주목은 우리나라 전국의 높은 산에서 볼 수 있는 키가 큰 나무이다. 높은 산에서 사는 나무다보니 자라는 속도가 느려 길이도 부피도 천천히 늘어난다. 그래서 나무는 더 단단하고 강해, 죽은 나무로도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서있다. 이 때문에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는가 보다. 실제로 태백산에는 300년 이상 된 주목만 4000여 그루라 한다.
주목은 키가 많이 크는 나무이지만 우리주변에선 잘 다듬어진 2m정도의 조경수로 눈에 익숙하다. 얼마 전까지도 보이지 않더니 추석 즈음하니 아파트 화단에서 주목의 다홍색 예쁜 열매를 발견했다. 앵두같은 열매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몇 알 따먹었다. 씨앗이 큰 것이 좀 흠이긴 하지만 부드럽고 즙이 많은 것이 먹기에 나쁘지 않다. 맛도 아주 달다. 주목 열매의 씨눈엔 ‘텍솔’이라는 항암물질이 들어있어 약으로 개발했지만 부작용이 심해 지금은 쓰지 않는다고 한다. “나를 봐 주세요.”하며 붉게 빛나는 열매를 새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것을 먹고 씨앗을 멀리 떨어트리는 것은 새들에게 주어진 공공연한 임무이다.
이 열매는 매혹적인 다홍색 외에도 특이하게 생긴 모양이 특징이다. 씨앗이 열매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처음엔 열매의 먹는 부분과 씨앗이 거의 같은 초록색이다가 점점 먹는 부분이 커지면서 씨앗을 약간 감싸고 붉게 변한다. 씨앗은 진한 갈색으로 변하면서 확실히 구별된다. 보통 식물은 겉씨식물과 속씨식물로 나뉜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 씨앗이 열매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니 주목열매를 보면 씨가 정말 보이는지 한번 들여다보면 재미있다.
소백산의 주목군락은 일찍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주목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바람이 많은 높은 산에 있기 때문에 나무의 큰 줄기는 곧게 자라도 잔가지는 바람결을 타고 휘어져 자란다. 그 모습 또한 볼거리이다. 나무의 크기를 가늠할 때 보통 나무의 높이와, 사람의 가슴 높이에서 잰 둘레를 사용하는데 소백산의 가장 큰 주목은 가슴 높이의 나무둘레가 2m에 이른다. 어른 2명이 양팔을 벌려 둘러야 하는 정도이다. 빨리 자라지도 않는 나무가 이렇게 크려면 정말 천년을 넘게 자라는 것이 맞겠다.
나무의 나이는 나이테를 보고 아는데, 죽은 나무는 잘라서 그것을 확인한다. 살아있는 나무는 생장추라는 도구를 이용해 나무 심을 뽑아 나이테를 셀 수 있다. 또 종류에 따라 가슴 높이의 직경과 나이에 대한 추정식이 이미 밝혀져 있어, 그 추정식을 사용해 직접 확인할 수 없는 나무의 나이도 알 수 있다. 나이테는 나이뿐 아니라 큰 불, 가뭄 등의 지난 자연현상의 기록도 담고 있다. 그래서 한 지역의 역사를 볼 때 그 지역의 나무와 숲의 이야기는 매우 중요하다.
나무는 얼마나 오래 살까? 그 종에 따라 수명이 모두 다른데, 주목, 은행나무처럼 수백 년 사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아까시나무, 오동나무, 목련은 상대적으로 짧게 수십 년을 산다. 꽃을 피우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기 때문일 것이다. 수명이 긴 나무들도 환경에 따라 그 정도에 차이가 많이 난다. 흙이 기름지고 물이 넉넉한 좋은 환경에선 쑥쑥 곧게 잘 자라겠지만 그만큼 미생물도 동물도 많으니 수명은 짧아진다. 오히려 바람 많고 건조하고 척박한 환경에선 비틀어지고 볼품없더라도 견뎌만 낸다면 오래 살 수 있다. 큰 변화 없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 가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이 왔다. 나 하나 흔들림 없이 산다고 정말 흔들리지 않는 때가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견뎌내는 것이 중요하다. 주목처럼 잘 준비하고 잘 견뎌야겠다.
* 본 게시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 2016년 10월 용인시민신문 필자의 게재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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