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게시글은 필자가 작성하여 용인시민신문에 기고 했던 글 입니다.
열매는 푸르지만 이름은 노란나무, ‘노린재나무’
높은 산의 자연림이 아니더라도 여름 숲은 울창하고 짙다. 한낮에도 숲속은 어두워서 나무그늘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더 밝고 따뜻하다. 밝은 빛을 따라 가다보면 숲길이 아닌 곳으로 자꾸 발이 간다. 무수한 거미줄을 얼굴로 끊어가며 숲을 헤매다가 푸른빛의 열매를 만났다.
숲 입구에서 봤던 닭의장풀 파란색 꽃보다 더 짙다. 숲을 푸르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청록을 말하는 것이고, 파란 꽃과 열매는 정말 ‘블루(Blue)’를 말하는 것이다. 푸른 숲에서 파란색은 영화 ‘아바타’의 판타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 판타지의 열매는 노린재나무 것이다.
보는 사람마다 탐이 났었을까? 길 가장자리 나무에는 이미 열매가 없다. 노린재나무의 전략이 먹힌 셈인 듯하다. 언뜻 들으면 냄새나는 곤충인 노린재와 연관 지어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노린재나무의 노린재는 색을 나타낸다. 나무를 태우면 노란색 재가 생긴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옛 어른들은 하나의 나무를 냄새 맡아보고, 베어보고, 태워보고, 구워도 먹고, 삶아도 먹고. 그 나무에서 노란 재가 나오는 것까지도 알 수 있게, 참 여러 가지로 들여다 봤나보다. 그것이 생활이었다. 추측해 보건데, 노린재나무의 이름은 우리 어머니들이 짓지 않았을까? 엄마들이 아궁이에 불 지피고, 나중에 남은 재를 긁어내면서 ‘어! 노린재네~’ 하셨을 것 같다.
노린재나무는 키가 작다. 흔히 숲에서 볼 수 있는 이 나무는 필자의 키를 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꽃도 열매도 모두 관찰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 나무 전체의 모습도 나무의 키높이까지 굵은 가지가 올라오고, 우산처럼 그 높이에서 가지가 편평하게 갈라진다. 멀리서도 ‘아, 노린재나무구나.’ 알 수 있다. 잎도 야들야들하지 않고 부러질 듯 빳빳하다. 꽃이 피기 전, 꽃봉오리가 얼마나 작고 예쁜지 모른다. 꽃이 피었을 때도 작은 꽃이 모여, 수관(잎이 나는 부분)을 모두 덮을 정도로 풍성하게 피니 아주 볼 만 하다. 나 보란 듯이 말이다.
키가 큰 나무들은 바람을 이용해 수분도 하고 열매를 날려 보내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 열매를 만들어 자기 아래로 떨어뜨린다. 내 그늘 아래에서도 잘 자라는, 아기나무들을 키운다. 하지만 키가 작은 나무들은 예쁜 꽃을 피워 동물들을 유인하고, 그들을 이용해서 수분도 하고, 열매를 멀리까지 보내기도 한다. 작은 키의 나무들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도 키가 큰 나무보다 키가 작은 나무들을 생활에서 많이 사용했을 것이다. 큰 나무를 베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니까.
숲 속에 키가 작은 나무들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그런데 그런 숲들이 가끔 보인다. 특히 소나무 숲을 가꾼다는 이유로 키가 큰 소나무들만 남기고 나머지 작은 키의 나무들을 모두 잘라버리는 것이다. 소나무숲 아래에서 자라나는 참나무 종류의 큰 키 나무들을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다.
시간이 지나 소나무 숲이 참나무 숲으로 바뀌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숲 아래층을 제거하는 것은 숲 면역력을 떨어트리는 일이다. 숲은 땅을 기반으로 하는 생태계이고, 키가 작은 나무들이 그 숲의 꼼꼼하게 메워준다. 다양한 환경과 더 많은 동물들의 공간을 제공한다. 그런데 그것의 부재는 벌거벗은 듯 너무도 어색하고 민망하다.
* 본 게시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 2017년 9월 용인시민신문 필자의 게재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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