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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t Life

용인의 나무, 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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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글은 필자가 작성하여 용인시민신문에 기고 했던 글 입니다.

 

 

“용인에 전나무가 많네, 눈여겨 볼만해.” 몇 년 전 아는 박사님이 필자에게 넌지시 건넨 말씀을 내내 마음에 두고 있었다. 영동고속도로를 타러 양지톨게이트를 향할 때에도 도로를 따라 심심치 않게 늠름한 전나무를 볼 수 있다.
그때마다 ‘이상하다. 높은 곳에 있어야할 것 같은데…’ 짧은 안목에 항상 의아했다. 알고 보니 용인의 시목이 전나무. 필자가 계속해서 전나무로 향하는 벡터를 발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진부의 월정사 전나무숲은 우리나라 ‘국민’ 전나무숲이다. 필자가 진부의 어느 식물원에서 근무하는 동안 그 웅장함과 청량감에 전나무숲길을 사계절 찾았었다. 실제로 전나무는 높은 산에 자라는 늘푸른큰키나무이다.

우리의 관심에서도 멀지만 거리상으로도 먼 곳에 있는 것이다. 먼지에 약해서 도시 가로수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기 힘든 나무가 맞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용인엔 전나무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전나무골, 전나무길이라는 명칭을 많이 찾아볼 수 있고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와 정수리에 걸쳐 전나무가 있다. 대대리의 한터초등학교에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부로 만들어진 정문에 한 아름 넘는 아주 오래된 전나무 두 그루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이렇게 큰 전나무의 피톤치드와 기를 받는 아이들이 참 부러웠다. 주변 다른 학교에도 전나무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처인구 호동에는 꽤 큰 전나무들이 낮은 산을 둘러 숲을 이루는 곳들이 있다. 소나무나 잣나무와 다르게 쭉쭉 뻗어 자라는 가지와 잎이 든든하다.

2010년 용인의 전나무숲에 대한 연구논문을 발견했다. 용인에 있는 전나무는 대부분 심은 것이고, 그 밑에서 어린 나무들이 자연적으로 자라고 있어 이곳이 전나무 자라기에 좋은 환경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나무숲을 오랫동안 볼 수 있을 것 같다.

용인의 전나무숲도 진부 월정사나 부안 내소사의 숲길처럼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돼 용인의 시목이 그 이름을 톡톡히 한다면 시목의 의미가 남달라지겠다.

전나무는 지리상 북반구 온대지역에 넓게 분포해 다른 나라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쓰인다고 한다. 잎 끝이 뾰족하고 빽빽해 장식할 때 많이 찔리고 불편했을 듯하다. 이제는 우리나라 특산식물(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식물)인 구상나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하니, 연말에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면서 전나무와 구상나무를 모두 떠올려보면 좋겠다.

전나무는 ‘전나무’ 또는 ‘젓나무’라고 한다. 바늘잎이 돌려나지 않고 전처럼 넓적하게 난다고 해서 전나무, 전나무 열매나 겨울눈에 흰 젖같은 액체가 나온다 해서 젓나무라고 한다. 식물 이름붙이기는 전적으로 처음 발견한 사람 마음이다.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식물도 복잡한 이름 만들기 매뉴얼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식물의 특징을 잘 살려 이름붙이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 식물의 역사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기는 경우도 많다. 지리산 어느 마을에 갔던 사람이 이곳저곳 다니다가 우연히 손에 잡힌 식물이 있었는데, 그곳 마을이름을 따서 ‘모데미풀’이 됐다.

작고 귀여운데다가 털이 복슬복슬한 잎이 나는 ‘노루귀’는 아마도 이름 지은 이가 동물을 참으로 사랑했던 게 아닐까? 슬프게도 우리나라 식물도감은 일제 침략기에 체계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식물 이름에 그때 감독을 맡은 일본인 ‘나까이’ 이름이 많이 남아있다.

식물명명규약에 따라 한번 지은 이름은 함부로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식물에 일본사람 이름이 남아있는 것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식물도감을 펼 때마다 그 아픈 역사를 보게 돼 필자도 마음이 아프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를 통해 식물분류학이 발전한다면 슬픈 과거도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 남을 것이다.

 

* 본 게시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 2016년 2월 용인시민신문 필자의 게재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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