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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t Life

바다를 닮은 순비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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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글은 필자가 작성하여 용인시민신문에 기고 했던 글 입니다.

 

 

올해도 여름이 무척이나 더웠다. 영동고속도로는 주말마다 더위를 피해 떠나는 차량들로 꽉 막혔고 주변에 물놀이장이란 물놀이장은 사람들 구경하기에 바빴다.
시원한 바다에 가서 파도타기며 모래놀이를 즐기다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 그렇게 바쁜 중에도 필자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짬짬이 모래땅에 뿌리박고 사는 식물들을 찾아본다. 놀러가서도 땅만 보며 다니니 아이들이나 신랑이 뭐라 생각할지.

동해안에선 매년 모래사장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현상 때문에 모래를 다른 지역에서 가져와야 하는 참으로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관광객을 많이 유치해야 하는 강원도 내의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곳에서 살아가는 동식물들에게는 살아갈 곳이 사라지고 있는 생존의 문제이다. 사구(바닷가 모래언덕)에 길을 만들고 식당이나 카페 등 사람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만들고 방파제를 넓혀가는 것이 원인일 것이다.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도 바닷가 모래밭에는 알게 모르게 싹이 트고, 자라고, 꽃 피우고, 열매 맺고 또 다음해를 준비하는 식물들이 올해도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사람들이 심어놓았지만 이제는 터줏대감인 해송은 언제보아도 든든하다.

그 아래에서 오랜 친구로 살아온 갯메꽃, 보리사초, 갯씀바귀, 해당화, 순비기나무. 어쩌면 하나같이 그들만의 매력이 있는지, 넋 놓고 오랫동안 보게 된다.

특히 순비기나무는 바다의 순한 색이 꽃 색에 담겨있고, 바다의 짠 내와 전혀 다른 향기를 품고 있어 참으로 신비한 식물이다. 바닷가 사는 사람들도 관심 있게 보지 않으면 그냥 풀이려니 지나치니, 순비기나무를 아는 사람이 더 이상할 수도 있겠다.

순비기나무는 바닷가 모래땅에 사는 작은키 나무이다. 비스듬히 옆으로 누워 자라고, 무리를 이루기 때문에 풀로 착각하기 쉽다. 여러 해를 사는 풀 중에도 밑둥이 나무처럼 딱딱해지는 경우가 많다.

또 우리나라에선 고사리가 풀이지만 따뜻한 나라에서는 고사리나무로도 살아가듯이, 식물이 풀인지 나무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냥 경계에 있는 또 다른 무리처럼.

아주 먼 옛날, 바닷가 식물들은 다른 힘센 식물들과 경쟁에서 밀려나 여기까지 왔을지도 모르고, 우연히 여기에 씨가 떨어져 살다가 정착했을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결국엔 살기 힘든 조건인 ‘소금기’라는 위험에 노출됐다.

순비기나무는 자기를 보호하는 방법으로 흡수된 소금을 털에 쌓이게 해 떨어뜨린다. 좋은 환경에 살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특이한 재주’이다. 특이한 재주가 생기는 환경으로 나를 내몰아야겠다. 하기 싫은 일도 찾아가며 해야겠다. 그러다보면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사구식물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바닷가 모래땅을 지키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순비기나무가 없었다면 동해안 하얀 모래사장은 벌써 사라졌을지 모른다’하면 너무 과할까?

제주도 해녀들이 잠수를 끝내고 나오면서 터뜨리는 숨비소리에서 순비기나무 이름의 유래를 찾는다. 해녀들이 두통을 치료하는데 주변에 흔한 순비기나무 열매를 썼다고도 한다.

우리나라 식물들은 거의 모두 약재로 쓰인다. 하다못해 개비름, 개똥쑥처럼 너무 흔해 가치 없다는 의미로 ‘개’자가 붙은 식물들도 말이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이 명언이다.

피서인파가 사라지고 가을의 시원한 바람도 절정이다. 단풍과 함께 순비기나무 열매도 알차게 영글어간다. 모래사장을 트랙터가 다니며 깨끗이 청소한다. 사람들이 놀다가 흘리고 간 여러 가지 물건들이 걸려 나온다.

하지만 순비기나무며 다른 식물들은 꼭꼭 숨어서 겨울을 잘 보내고 다음해에 또 예쁜 꽃을 피우길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순비기나무를 알아주고 지켜줬으면 한다. 그래서 순비기나무가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길 바란다.

 

 

* 본 게시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 2015년 10월 용인시민신문 필자의 게재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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