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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t Life

고향집 감나무와 고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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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글은 필자가 작성하여 용인시민신문에 기고 했던 글 입니다.

 

 

“감 많이 먹으면 똥 안 나온다, 조금만 먹어라~” 어렸을 때 할머니가 항상 하신 말씀이다. 젊어서부터 틀니를 하셨던 할머니는 가을이면 잘 익은 홍시를 후루룩 잘 드셨다. 필자의 고향인 강원도 동해 삼척엔 감나무가 참 많았다. 담장 안에 감나무 한그루 없는 집이 없었다.
이층집도 드물던 그 시절엔 집보다 높던 감나무가 엄청 크게 느껴졌다. 감나무 가지는 잘 부러지기 때문에 절대로 나무 위에 올라가 감을 따지 않는다. ‘감나무에서 떨어져 곱추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동네 살던 곱추 아줌마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감은 끝을 둘로 나눠 만든 대나무장대로 딴다. 그 장대의 길이는 짧게는 2m, 긴 것은 5m나 됐다. 매년 가을이면 감을 따는 것이 집안의 큰 일이였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감을 따시고 할머니와 엄마가 감을 정리하셨다.

언니, 동생들과 무거운 장대를 들고 고개가 꺾어져라 감을 따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돌돌돌 예쁘게 돌려 깎아 곶감도 만들고 바닷물에 담가 삭히기도 했다.

홍시는 똥 안 나올까 무서워 먹기 꺼려졌지만 삭힌 감은 정말 맛있어서 겨울 내내 잘 먹었다. 고향집 감나무는 집을 둘러싸고 여러 그루였는데 유독 집 앞 나무에 털이 숭숭한 송충이가 많았다. 학교에 갔다 오는 길엔 송충이가 머리에 떨어질까 그 밑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이제와 보니 그것은 매미나방 유충이었다. 매미나방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암컷은 알을 낳은 후 자기의 털을 뽑아 알집을 감싸는 것이 매우 특징적이다. 겨울을 무사히 알 상태로 보내고 봄에 부화하는 자기 새끼를 보호하려는 것이니, 그 모성애도 모르고 엄한 애벌레만 밟아 죽였나보다.

어느덧 입동이 지나 김장철이 됐다. 비가 한차례 내리고 바람이 불자 나뭇잎이 후두둑 맥없이 떨어진다. 나뭇잎은 제 할 일을 다 했는데 요즘 동네 감은 제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 

남쪽지방에서 품질 좋은 감을 대량으로 생산해 전국으로 보내니, 우리 주변 감나무는 까치밥 신세로 전락했다. 감나무는 야생 감나무인 고욤나무가 대목이다. 감나무는 사람이 만들어낸 나무인 것이다.


고욤나무도 감나무처럼 키가 크지만 열매는 매추리알 정도 크기에 야무지며 다 익으면 진한 갈색을 띈다. 과육이 많은 열매는 익었을 때 동물들의 눈에 먹음직스러워 보여야 한다.
그것이 식물이 사는 이유이다. 그래서 선명한 붉은 색 열매가 많다. 그런데 고욤나무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야생 과일 중 고욤나무가 으뜸이기 때문에 굳이 ‘나 먹으러 와라’ 광고하지 않는 것일까?

고욤나무는 전국 산기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나무 모양이 특징적이지도 않고 꽃이 화려하지도 않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용인에서 감나무와 고욤나무를 함께 볼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초부리 자연휴양림이다.

휴양림 입구에 들어서 언덕을 올라가면 잔디밭 왼편으로 큰 감나무와 고욤나무를 볼 수 있다. 운 좋게 11월 중순 휴양림을 방문한다면 감도 보고 고욤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감나무 꽃도 심심하면 주워 먹는데 고욤나무 꽃도 꼭 그렇게 생겼다.

요즘은 식용 꽃들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못 먹는 꽃이라면 꽃잎에 털이 많거나, 향이 진하거나, 너무 작거나, 보기에 좋지 않거나, 진짜로 독이 있다. 그러나 진달래와 비슷한 철쭉만 조심한다면 독성이 강한 식물들은 우리 주변에서 보기 힘들다.

예전만큼 자연을 그대로 먹을 수 있다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 질 것이다. 야산에서 제비꽃을 뜯어와 살짝 밥 위에 올려보는 것도 좋다. 개나리꽃도 걸어놓고 자린고비가 굴비 보듯 눈으로 먹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 

진달래가 피는 봄에 화전을 하고, 아까시나무 꽃이 피는 초여름엔 꽃을 튀기고, 가을엔 감꽃을 간식으로 먹자. 오늘따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것이 동네 아줌마들과 국화차 마시며 수다 떨기에 딱 좋다.

 

 

* 본 게시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 2015년 11월 용인시민신문 필자의 게재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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